자기계발

이 기록 전통들

뉴스레일 2022. 4. 6. 21:31

구어로서의 말이 발달된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고 년 전 수메르어에서 시작하여 점점 더 많은 수의 고대 언어들 기원 전후 에는 수십 개 년 전에 이르러서는 개 가까이 되는 언어가 문자로 기 록되었으며 수많은 점토판 갑골 파피루스 양피지가 인류 최초의 언어 기 록을 담고 있다.

 

이 기록 전통들

출처: 구글

이 기록 전통들을 보면 인류는 언어에 대해 호기심이 강했던 것으로 보이고 제 언어로서 수메르어를 학습하던 자료들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기원전 년경변경 중동 지역에서는 이미 정규의 제 언어 교육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었으며 철학적 성향이 강했던 고대 그리스인들은 의미와 논리에 대해 깊이 있게 탐구했고 기원전 년경 고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는 그리스 학자 아 폴로니우스 디스콜로스가 가 품사를 고안해냈으나 그러나 산스크리트 언어학 전통에 비하면 이 성과들은 그리 대단한 것 이 아니었고 산스크리트 언어학은 파니니가 기술한 유명한 문법서아스 타댜이에 집대성되어 있었으며 어떤 언어의 어떤 문법도 이 문법 체계의 우아함과 광범위함을 따라가지 못하며 또한 용법과 설명 언어와 메타언어 이론과 메타 이론을 계층화하는 독창적인 방법은 서구 철학에서 이루어진 주 요 발견들보다 년이나 앞서고 마치 정보를 압축하고 알고리즘을 형성하는 현대의 전산 처리 방법을 예견이나 한 듯한데 현대 프로그래밍 언어에는 그 이름을 따 파니니 배커스 형식 나이라 명명된 구문 형식도 있으며 고대 로마의 번거로운 숫자 표기를 뛰어넘게 해 준 영제로 개념의 근 원도 산스크리트 문법 전통이었고 초기에 파니니 문법은 구전되었다 인간의 기억에 의존해야 한다는 점 때문에 산스크리트 문법가들이 그토록 간결성을 중시했을 수도 있으며 물론 당시에도 인도에 여러 기록이 이루어졌지만 주로 종교 텍스트를 대상으로 한 기록이었으며 훨씬 후대에 이르러서야 파니니 문 법은 문자화 되었고 이에 따라 점점 더 많은 해설 점점 더 긴 해설이 덧붙여지 게 되었고 산스크리트 언어학자들은 언어가 변화하는 현실에 맞서 신성한 제의 성가 전통들을 완벽히 발음하고 정확히 전파하고 싶어 했으며 이들은 언어를 제대로 연구하여 이를 종교의식에 적용해야만 언어 면에서 칠칠찮은 악마의 운명을 피할 수 있으리라 믿었으며 인드라 신에게 복수할 아들을 구하는 주 문을 외다가 강세를 잘못 발음하는 바람에 도리어 인드라에게 죽임을 당할 아들을 구하는 주문을 하게 된 트와 스트리처럼 말이었으며 주문 구절 중 는 강세를 에 두면 인드라의 살해자이라는 뜻이 되는데 그가 실수로 강세를 선에 두면서 인드라에게 살해당하는 자라는 의미가 되었던 것이고 후대의 산스크리트어 문법가 바 르타리가 지은 시의 첫째 연에 있는 말이란 시작도 끝도 없는 만고 불 멸의 브라만이다즈라는 시구를 보 면 필연적으로 형태가 변해가는 구어에 맞서 종교의식 언어의 발음을 바로 잡으려 했던 이들의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.

 

고도의 음성학연구

인도 언어학자들의 많은 업적 가운데 고도의 음성학 연구도 빼놓을 수 없고 산스크리트어의 각 소리가 어떻게 발음되는지 상세히 기술된 덕분에 오 늘날 우리는 산스크리트어가 어떻게 발음되었는지 비교적 확실하게 알 수 있 다 여타 고대 언어에 대한 지식도 이에 미치지 못하며 그런가 하면 이들은 문법가란 어떤 단모음 길이의 반을 줄이고는 아들을 낳은 듯 기뻐하는 인간들이 다크 치즈 나 문법의 속성을 제대로 비꼰 최초의 인물들이기도 한데 아마 운 없게도 언어학자들과 어 울리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 말에 탄복할 것이며 유배 시절 오비디우스는 무엇을 했을까 기원후 년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는 로마에서 멀리 떨어진 식민지 트라키아로 추방당했고 지금의 루마니아 콘스탄차 지역인 이곳에는 게테족이 살고 있었고 몇 년 후 그는 게테어로 아우구스투스 황제를 칭송하는 시를 쓸 정도로 언어학자다운 재능을 펼쳐 보였다고 하며 테어를 배우는 그 상황이 그리 달갑지는 않았겠지만 오비디우 스는 시인으로서의 재능도 있는 데다가 유배 생활이 상당히 길었기 때문에 게 테어를 잘 배운 듯한데 오늘날의 학자들은 게 테어에 대해 다만 조금이라도 알고 싶어하고 소아시아와 발칸 반도 사이에서 이루어진 언어 변화 그리고 고대 로마 시대 그 지역에 살았던 민족들을 파악하는 데 있어 이 언어가 중요 한 단서가 되기 때문이며 그러나 오비디우스의 시는 물론 게테어로 된 어떤 기록도 오늘날 전하지 않고 왜냐하면 로마인들은 자신들이 경멸해 마지 안 는 미개한 이방의 식민지나 이웃 국가의 언어에 거의 관심을 갖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배된 오비디우스처럼 특별한 환경이나 재능 덕에 그 저항감을 이겨냈다 해도 이것이 문자화 된 기록으로 남겨지지는 않았고 시가 사라진 것은 안 타깝지만 이는 불가피한 일이었고 누가 거기에서 시를 베끼거나 보존했겠는 가 로마인들은 그 시를 읽을 수 없었고 그러한 일에 신경을 쓰는 게 테인은 아무도 없었고 오비디우스의 유배는 아무런 언어학적 유산도 남기지 못했지만 훨씬 후 대에는 이와 대조적인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기에 세기 제정 러시아 시절 은 물론 러시아 혁명 이후에도 수많은 폴란드인 독일인 러시아인이 시베리아로 유배되었는데 이들은 시베리아 제어에 대해 방대하고 통찰력 있는 기록을 남겼고 크레이 노비 치아 이아 둘존이 보고라스이 등 추방된 학자들 은 케트어 유카기르 어나 니브히에 추크치어 같은 언어들을 탁월하게 기술해냈으며 유배지 주변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 조사 결과에 대 한 기록과 유포를 막는 정부의 조치 속에서도 꺾이지 않았던 연구 의지 이 학 자들이 보여준 호기심과 의지가 고대 로마 세계에는 없었고 다시 로마로 돌아가 보자 정교한 과학과 문명의 상징인 그리스어는 예외였지만 다른 언어에 대한 로마인들의 무관심은 가히 충격적인 수준이었으며 수 세기 동안 로마인은 북쪽으로 국경을 맞대고 있는 에트루리아 인들과 교류했기에 다방면에서 로마인들의 문화적 멘토였다고 인정되는 이들이고 제장에서 언급한 것처럼 에트루리아어는 인도유럽어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이며 에트 루리아족의 기원에 관심을 가졌던 그리스의 수사학자 디오니시우스나 는 언어 면에서든 생활 방식 면에서든 이들은 다른 어떤 국가와 도 맞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고 거 따라서 에트루리아어에 대해 알게 된다면 로마 확장 초기까지만 해도 남아 있었던 유럽 내의 계통적 다양성을 이해하 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며 로마인들이 에트루리아에 아예 무관심했던 것은 아니며 지도자층에서 는 에트루리아인과 결혼하는 일이 흔했기에 클라우디우스 이우 황제의 첫째 부인 우굴라닐라山니해도 에트루리아인이었다고 합니다.

 

단편적인 문구

클라우디우스 황체는 스무 권에 이르는 에트루리아 역사를 쓰기도 했는데 아쉽게도 이것 역시 현재 전 하지 않고 에트루리아 인들에게도 오랜 기록 전통이 있었고 그리스인과 로 마인도 당시 여러 지역에 대한 지리서를 저술했지만 에트루리아어에 대해 논 의한 그리스어 기록 라틴어 기록은 단 하나도 남아 있지 않기에 로마 학자들이 두 언어로 기록한 단어 목록 혹은 에트루리아어와 라틴어 에트루리아어와 그리스어로 된 짧은 대역 텍스트라도 남겼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그런 자료는 전혀 존재하지 않으며 다행히 몇몇 차용어와 지명 덕분에 우리는 에트루리아 글자가 어떻게 발음되는지 안다 또한 가족묘의 명문에 나타난 맥락을 통해 벨 투르의 아들 라르트 쿠클르니 의 같은 단편적인 문구를 번역할 수 있기에 이 단편적인 문구는 속격 접미사를 겹쳐 쓰는 특이한 방식을 보여주고 있어 학자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며 를 문자 그대로 풀면 벨 투르의 소유인 누군가의 소 유인 가되기에 고대 지중해 연안 일부 지역에서도 발견되는 이 언어 현상이 인 도 유럽어에는 거의 없고 그러나 이 감질나는 언어 현상은 대부분 한 언어에 서만 그것도 문맥 없이 발견되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것을 발음하는 것 그러고는 그 뜻이 무엇일까 궁금해하는 것이 전부인데 문화적 군사적 종교적 라이벌 집단의 언어가 아닌 이상 다른 언어에 대해 무관심한 것은 모든 고대 문명에서 마찬가지였다 다방면에 호기심이 많았던 그리스인들조차도 자신들이 접하게 된 언어에 대해 사실상 아무것도 우 리에게 남겨주지 않았나 오로지 그리스어만 연구되며 외래 단어들은 그리 스 문자로 쓸 수 있는 것에 한하여 기록되었을 뿐 이방의 소리나 소리 체 계에 대한 학문적 관심이 피력된 적도 없었고 크세노폰이 남긴 명언 무언 가 배우려면 다른 이들에게 들어라 라는 당연 한 이야기지만 이 명언 속 다른 이들의 말이란 분명 그리스어로 된 말이지 이방인들의 언어로 된 말은 아니었고 새로운 세력이 출현할 때마다 그들은 자 기네 언어를 기록하는 문자 체계를 발달시켰고 그러기 위해 주로 이전 세력들 의 문자 체계를 응용했기에 하지만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새로운 세력이 다른 이들의 언어에 관심을 보인 적은 없었다 다른 마음과 생각을 가진 이들에게 말하기 빛은 분명한 그림자를 던 지 고대상과 느낌은 만져질 것처럼 드러나지만 아직은 가까이하기 어렵다고 합니다.

 

나는 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내 가 너와 하나 되기 위해서 얼마나 멀리 가야만 할까 군사적으로 약한 민족들의 언어를 배우고 기록하려는 생각은 초기 기독 교에서 비롯되었고 다른 민족을 개종시키기 위해 그 민족들이 알아듣는 언어를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.

 

출처: 아무것도 모른다